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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신학

유스티노스와 로고스론

로고스
로고스

유스티노스와 로고스론

 

유스티노스(Justin Martyr, 100년?-165년)는 2세기의 기독교 신학자로서, 그리스 교부 계통에 속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교부" 또는 "호교가(혹은 변증가)"라 불리는 최초의 기독교 신학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유스티노스는 신앙을 합리적으로 옹호하려는 데 주력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유스티노스는 정교회, 비카르케돈파, 가톨릭 교회, 성공회, 루텔 교회 등에서 성인으로 숭배되고 있습니다.

유스티노스(Justin Martyr)는 자신의 저술에 따르면 사마리아(이스라엘의 북부)의 플라위아 네아폴리스(현재의 팔레스타인 자치구 나블루스)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프리스크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스티노스는 아테네에서 로마로 이동하기 전에 다양한 철학 제파를 배우고, 에베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그노시스주의가 번성하면서, 유스티노스는 이를 '기독교의 정당한 신앙을 왜곡하는 것'으로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유스티노스는 안토니우스 피우스 제의 시대에 로마로 이주하여 거기서 기독교를 전파하는 사학원을 열었습니다. 그는 그노시스주의와의 격렬한 논쟁에서 그 기독교 신앙을 방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논파한 철학적인 입장과 숭고한 신앙으로 165년에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유스티노스는 '순교자 유스티노스'로 불리기도 합니다.

로고스론은 유스티노스의 사상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유스티노스는 그리스 사상과 기독교 사상을 융합하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이것은 특히 "로고스"라는 그리스 철학의 용어를 기독교 사상에 도입하는 것에서 나타났습니다.

로고스는 그리스어로 '말'이나 '이치'를 나타내는데, 유스티노스는 이 용어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편적·신적 로고스, 순수 지성, 완전한 진리"로 여겨, 로고스를 하나님의 말씀과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론과 달리, 유스티노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한 로고스로 보았습니다.

로고스론의 개념을 통해 유스티노스는 그리스도교 사상을 그리스 철학과 연결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인들에게 기독교 사상을 해설하고 오해나 편견을 없애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의 글에서는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철학 간의 대화가 나타납니다. 이로써 유스티노스는 자신의 시대에 퍼져있는 다양한 철학적 입장에 대처하면서, 그리스도교를 합리적으로 옹호하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 간의 관계


유스티노스는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 간의 관계를 성서를 기반으로 설명하며 특정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나온 내용을 인용하여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를 다루었습니다. 그는 아들이 아버지에 의해 태어났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들은 본질적으로는 동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스티노스는 아들과 아버지가 같은 '존재/실체'(ousia)이면서 별개의 자격(prosopa)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성문화되고 퍼진 삼위일체 신학 용어의 일부를 먼저 사용했으며, 이것은 테르투리아누스와 이후의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유스티노스는 아들 예수가 아버지에게서 유래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러한 관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구별하는 몇 가지 비유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말을 예로 들어 말이 낳고 있는 동안에도 처음 말이 손상되지 않는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트뤼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이 매우 큰 싸움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스티노스의 현존하는 작품으로는 '유대인 트뤼폰과의 대화', '제1 변명', '제2 변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작품으로는 '전이단 반박', '마르키온 반박', '그리스인 반박', '하나님의 위광에 대해', '혼에 대해서' 등이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유스티노스의 시대 이후로 전달되지 않아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