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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리고 신학

한국 기독교 역사의 정리와 연도별 요약

한국 기독교 시작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조선에 기독교 신자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1593년에는 그리스도인 다이묘 고니시 행장이 조선에 처음으로 기독교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예수회 사제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가 쓰시마를 거쳐 쿠마가와에 상륙했지만, 그의 주된 활동은 일본군의 종군 사제로서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사람들에게 포교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631년에는 중국 경유로 조선에 기독교 관련 서적이 수입되었으며, 정조 시대에는 베이징 예수회가 조선의 삼행사와 접촉하여 최초의 포교가 이루어졌습니다.

1777년경부터는 기독교를 연구한 학자들 중에서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들은 사적으로 기독교를 믿었습니다. 조선사상 최초의 기독교 예배소는 1784년에 평양에서 이승훈이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승훈은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서 기독교를 전파하였습니다.

조선에는 선교사가 직접 파견되지 않았으며, 가톨릭이 조선에서 자발적으로 수용되었습니다. 이승향이 베이징에서 귀국한 뒤 사적으로 서학을 믿던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서울에서 정기적인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이후에는 파리 외국선교회 선교사들이 베이징을 거쳐 조선 북부로 들어와 가톨릭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조선 최초의 선교사는 1794년에 중국인 선교사인 주문목(周文謨)입니다.

1845년에는 김대건이 상하이에서 조선 최초의 사제가 되어 귀국하여 포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유교가 사회의 근본 사상으로 여겨져 가톨릭은 사교로 간주되어 탄압을 받았습니다. 김 사제는 1846년에 처형되었고, 그와 103명의 신자는 '기독교 기교'를 거부하여 처형당했습니다. 이들은 1984년에 로마 교황에 의해 열성 성인으로 선언되었습니다.

1866년에는 대원군 정권 하에서 프랑스인 사제 9명과 가톨릭 신도 약 8,000명이 병인 교옥에서 포박과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프랑스의 개입을 불러일으켰으나, 조선군에 의해 격퇴되었습니다. 살아남은 리델 신부는 이후에도 조선에서 포교를 이어나가며 가톨릭 신자는 어렵고 힘든 환경에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현재 한국의 가톨릭 신자 비율은 약 10%에 이릅니다(2005년 기준). 이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조선교회사'는 샤를르 다레에 의해 출판되었습니다.

1876년 조선이 개항하면서 구미 국가와의 외교관계가 수립되자, 개신교 제파가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도 몇몇 선교사가 조선을 방문했지만, 1884년에는 메소지스트파의 헨리 어펜젤러와 장로파의 H.G. 언더우드가 인천에 상륙하여 정착한 선교사들에 의한 개신교 포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장로파는 1885년에는 소년을 대상으로 한 배재학당을, 메소지스트파는 1886년에는 소녀를 위한 이화학당을 창설하여 교육에 주력했습니다. 이 두 학교는 고종에 의해 관립의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이 개설된 1886년에 설립된 것으로, 선교사들은 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887년에는 스코틀랜드 장로파에서 만주로 파견된 존 로스에 의해 봉천의 동관교회에서 신약성서 전권이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이렇게 선교사들은 조선에서 기독교 신앙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한국에서는 기독교 리바이벌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1907년에는 선교사 R.A. 하디 등에 의해 성서 연구회가 개최되어 신앙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조선의 기독교는 민족성과 연결되어 갔습니다. 1909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세례명 토마)도 17세 때에 가톨릭 계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또한, 고종의 정치 고문이 된 호머 헐버트는 일본의 대외침략성을 비판하고 일본의 야망이 제지되지 않으면 만주와 중국에 대한 침략으로 이어져 극동의 안전평화를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경고하며, 일본에 의한 한국 병합 이후에는 조선 독립 운동을 지원했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 요약
1593년: 조선에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인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가 발을 디딘 것으로 알려짐.
1631년: 조선에 기독교 서적이 중국 경유로 수입되기 시작.
1784년: 이승훈이 평양에서 조선 최초의 기독교 예배소를 설립.
1845년: 김대건이 상하이에서 조선 최초의 사제가 되어 귀국하여 포교 시작.
1866년: 프랑스인 사제 9명과 가톨릭 신도 약 8,000명이 병인 교 옥 사건으로 포박·처형.
1910년: 한일 병합 이후, 일본 조합기독교회가 조선선교를 강화하고, 연합군정 하에서 종교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는 변화 발생.
1937년: 노미조바시 사건 이후 신사 참배 강요 정책이 시작되며, 일부 기독교인이 항거하고 처형됨.
1945년: 연합군의 정치적 지배로 종교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는 등의 변화 발생.
1950-1953(한국전쟁): 전쟁으로 인한 어려운 생활조건 속에서도 기독교가 퍼지는 데 영향을 미쳤음.
한국 전쟁 중에는 북한에서 많은 가톨릭 신자가 한국으로 도망친 사례가 있었고, 전쟁 상황에서는 십자가를 이용하여 유엔군(특히 미군)의 비호를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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