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와 회심
354년에 북아프리카 로마 속주의 타가스테에서 태어난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머니 모니카와 이교도 아버지 패트리키우스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변론술을 공부하며 370년부터 타가스테의 부유한 로마니아누스 전의에서 배웠습니다. 아버지 패트리키우스는 371년에 사망하고, 이후 여성과 동거를 시작하여 372년에는 사생아인 아들 아데오다투스가 태어났습니다. 동거는 15년간 이어졌다고 합니다. 당시의 모습을 회상하며 "나는 육욕에 지배되어 거칠고 미친 욕망에 완전히 몰두했었다"고 자신의 '고백'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회심하기 전에는 선악 이원론의 마니교를 신봉했으나, 로마 철학에 대한 키케로의 작품을 통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마니교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네오플라토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며 마니교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383년에 로마로 이주한 아우구스티누스는 386년에 밀라노에서 주교 암브로지우스와 어머니 모니카의 영향을 받아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387년에는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세례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모니카가 아프리카로 돌아가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들과 동료들과 함께 수도원 생활을 시작하였고, 그 규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계칙'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391년에 히포레기우스의 사제로 성직을 받은 아우구스티누스는 396년에는 주교로 선출되어 430년에 그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 동안 고트족의 로마 침공과 이교도들에 대한 기독교에 대한 공격에 응하기 위해 저술한 "신의 나라"는 그의 후기를 대표하는 저작으로 손꼽히게 됩니다. 최후에는 게르만 인의 일족 반달인에게 히포레기우스가 포위되어 몰락과 고대 철학자로서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와 "땅의 나라"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중세 시대의 기독교 교리와 정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양국사관' 또는 '2세계론'으로 불리며, 하느님의 나라와 땅의 나라로 나뉩니다. 전자는 예수님이 주신 사랑의 공동체이며, 후자는 세속세계로 정의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두 나라가 서로 대체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는 순수하게 영적인 세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설득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조차도 기본적으로는 '땅의 나라'에 속하며, 이는 교회 내에서도 기독교와는 이질적인 세속의 특징이 혼합되어 있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주장했습니다. 이에도 불구하고 '땅의 나라'에서 신앙을 대표하는 것은 교회이며,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영적 권위로 여겨진다고 밝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러한 사상은 정신적인 기독교 공동체와 세속 국가를 구별하고, 기독교 세속 국가에 대한 우위와 보편성의 근거로 인식되었습니다. 그의 사상에 따르면 '땅의 나라'와 그 정치질서는 시간적이고 한정적인 것에 불과하며, 정치질서는 비록 상대적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에 따르면, 이교 국가에는 진정한 정의가 없고, 기독교에 기반한 정치 사회만이 정의를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국가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반해 비기독교적인 정치 사회에는 "국가"라는 명칭을 주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국가를 타락한 인간의 지배욕에 근거하는 비겁한 존재로 삼아, 그 존재 이유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봉사라고 주장하며 이는 가톨릭 교회에 종속됨으로써 얻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그의 개인주의적으로 기울어진 신앙과 교회조차도 세속적이라는 주장은 중세 시대의 교회 비판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종교 개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국가와 종교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영향을 미치며, 그의 교리는 서구 정치 사상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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